패션계에 한 획을 그은 미우치아 프라다

미우치아 프라다 (출처: 위키피디아)
미우치아 프라다 (출처: 위키피디아)

미우치아 프라다 (Miuccia Prada)는 이탈리아의 억만장자 패션 디자이너이자 성공한 비지니스 우먼으로, 패션계의 저명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명품 프라다의 창업가 미우치아 프라다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유년시절

미우치아 프라다는 1949년 5월 10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마리아 비앙키였으나 1980년 경 이모에게 입양되며 미우치아 프라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매우 개성있는 아이로 알려진 미우치아 프라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으며, 주로 학문적인 호기심이 많아 이를 찾아보고 알아내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최종 업적이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이기 때문에 디자인 관련 학과를 나왔을 것 같지만, 밀라노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까지 취득 할 정도로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패션계 경력의 시작

1970년 밀라노에서 활동한 여성 인권 단체에 참여하여 여러가지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1970년도 중반에는, 할아버지인 마리오 프라다가 "프라다"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고급 가방을 제조하는 제조업에 뛰어들어 악세사리 디자인부터 시작하여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으며 1985년도에는 미우미우라는 프라다에 속한 브랜드의 제품으로 핸드백을 선보였는데 이는 미우치아 프라다의 첫 성공이며 데뷔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89년 여성복 디자인을 대중에게 발표했으며 1992년 미우미우는 자신의 옷장에서 영감을 얻어 비싸지 않은 여성복 상품을 선보였습니다. 

1994년 프라다는 런던 패션 위크와 뉴욕 등에서 콜렉션을 선보였으며, 남편인 패트리지오 베르텔리가 리테일과 상업적 전략 등을 맡아 프라다는 헬무트 랭, 질 산더, 아제인 아라이아와 같은 브랜드로 성공적인 확장시켜 프라다는 남녀 모두를 타겟으로 한 향수, 신발 그리고 가죽제품 등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남편인 패트리지오 베르텔리와 미우치아 프라다는 함께 공동 CEO로 활동중이며 2020년도에는 프라다의 유일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마지막 콜렉션을 발표하였으나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해 짧은 영화로만 공개되었습니다. 

 

프라다의 브랜드 가치

미우치아 프라다는 프라다라는 브랜드에 특별한 감각과 철학을 반영하고 있으며 혁신적이며 정교한 디자인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현재 프라다를 명품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때로는 과감하고 세련되었으며 강렬한 색상과 패턴이 돋보이는 것이 그녀의 디자인 특징이기 때문에 패션계 뿐 아니라 예술계에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으며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 프라다는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환경보호에 앞장서 한 브랜드의 CEO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여러가지 활동으로 미우치아 프라다의 리더쉽이 프라다를 더욱 가치있는 기업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개인적으로 명품 브랜드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처음으로 프라다를 알게 된 것은 LG와 프라다의 합작으로 나온 프라다폰 3.0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모바일 폰에 명품을 입힌다는 것은 굉장히 참신하였고, 모바일 폰 자체가 명품이 된 느낌을 받았는데 이러한 전략이 프라다가 일반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브랜드 가치가 올리는 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시간을 통해 많은 분들이 프라다라는 브랜드를 좀 더 친숙하게 알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미우치아 프라다의 이야기를 요약하여 알려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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